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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도시락 속의 머리카락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도시락 하나 변변히 싸들고 다니기 힘든 학생이 허다할 때였습니다.

옆자리 친구도 그랬습니다. 반찬은 언제나 시커먼 콩자반 한 가지. 소시지와 햇님 같은 계란부침이 얹혀 있는 내 도시락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게다가 친구는 항상 도시락에서 머리카락을 골라낸 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밥을 먹었습니다. 그 불결한 발견은 매일같이 되풀이됐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지저분하면 매일 머리카락일까?'

친구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내색을 할 수는 없었지만 불결하고 불쾌하고 그 친구에 대한 이미지마저 흐려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후에 그 친구가 나를 붙들었습니다.

"별일 없으면 우리집에 가서 놀자."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같은 반이 된 후 처음으로 집에 놀러 가자는 친구의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를 따라간 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가파른 달동네였습니다. 허름한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친구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친구 왔어요!"

친구의 들뜬 목소리에 삐거덕 방문이 열리고 늙으신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이구, 우리 아들 친구가 왔다고?  어디 좀 보자."

그런데 방문을 나선 어머니는 기둥만 더듬으며 두리번 거릴 뿐,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나는 순간 콧날이 시큰해져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녀석의 도시락 반찬은 오늘도 보나마나 콩자반입니다. 그러나 앞을 못 보시는 어머니가 더듬더듬 싸준 도시락. 그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그 속에 뒤섞인 머리카락조차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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