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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마지막 여행

첩첩산중 작은 마을에 칠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한 효자였습니다. 아들은 툭하면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푸념하는 어머니를 참 극진히도 모셨습니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 주던 어느 날, 어머니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애비야, 여기선 멀지?"

"어디가요 어머니?"

"아, 그 서울이라는 데 말이다."

"왜요, 가고 싶어서요?"

"아니다. 이 꼴로 가긴 어딜 간다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산마루 넘어 읍내 밖으론 나가 본 적이 없는 어머니였습니다. 칠순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 꼭 한번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서울타령이었지만 차만 타면 멀미가 나는 통에 젋어서도 읍내 나들이조차 변변히 못한 어머니가 이 산골에서 서울까지 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어느 날, 아들은 손수레를 개조해 누울 자리를 만들고 생애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는 어머니의 서울 구경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 서울 구경 시켜 드릴게요."

"증말이냐? 지금 가는 거여?"

어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예, 어머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가만 있거라, 그럼 짐을 싸야지."

어머니가 짐을 꾸린다며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낸 것은 보자기에 고이 접어 간직해 둔 수의였습니다.

"아니, 이걸 왜?"

아들은 당황했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 차마 말릴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수레를 끌고 산 넘고 물을 건넜습니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아들은 어머니가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며 기운을 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먼 여행이 힘에 부친 어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길에서 잠들고 길에서 눈뜨기가 몇날 며칠째 이어졌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특별한 자가용이 언덕을 넘어 마침내 서울 문턱에 다다랐을 때 아들은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신천지가 바로 눈앞인데, 어머니는 수의 보따리를 꼭 끌어안은 채로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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