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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발깔개를 터는 남자

나는 빌딩 숲 한구석에 있는 구두병원 원장입니다. 경력 삼 년째라 이제는 구두 모양만 봐도 그 사람 성격이며 건강 상태, 사는 정도까지 알 수 있을 만큼 이골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같은 시간에 지하도 입구에서 발깔개를 털고 가는 남자. 그는 지하철공사 직원도, 청소원도 아닙니다. 그런데 보물찾기라도 하듯 구석구석 놓여 있는 발깔개를 죄 찾아내 말끔히 털어 놓고 때론 물빨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여학교 선생님이라고도 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돈이 벌리지도 않는 일에 그는 왜 그토록 매달리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그에게 말을 붙여 보기로 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구두 닦아 드릴게요."

어느 날 나는 내 초라한 구두병원으로 그를 초대했습니다. 그의 낡은 구두를 닦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가 지하철 발깔개를 닦게 된 사연은 알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겁니다.

"근데 아저씨,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대체 왜 발깔개를 털고 다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한참을 뜸들이다 사연을 털어 놓았습니다. 군 복무중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지하철 발깔개의 한쪽을 잘라냈습니다. 그 까칠까칠한 면으로 군화를 닦으면 광이 잘 났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술기운에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한 일이 제대 말년엔 고칠 수 없는 버릇이 돼 버렸습니다. 제대 후 그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단에 서서 참되라 정직하라 가르칠 때마다 젊은 날 그 일이 부끄러워 아이들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얘기를 하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런, 내가 자네한테 별소리를 다 했구먼."

발깔개를 터는 것은 양심에 낀 때를 터는 참회라며 그는 잘 마른 발깔개를 들고 지하도로 내려갔습니다. 세상엔 더 큰 죄를 짓고도 티끌만한 죄책감도 없이 사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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