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달, 6월이 시작 되었다.
이번 한달만큼은 모쪼록 누구나 근심걱정 없이 신명나는 그러한 6월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지방선거' 와 '월드컵' 이 겹쳐있는 흥미진진한 6월.
이번달에 행해지는 각종 행사와 기념일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1일인 오늘은 '세계 우유의 날' 이다.
그리고 5일은 '환경의 날' 이다.
또, 6일은 '현충일' 에다 '망종' 이다.
9일은 '치아의 날' 이다.
또, 10일은 '6.10 만세운동' 의 날.
그리고 14일은 달콤한 '키스데이'.
16일은 창포물에 머리 감는 '단오'.
17일은 '사막화방지의 날'.
18일은 '건설의 날' 이다.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21일은 1년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
마지막으로 25일은 남북분단의 시발점이 된 '6.25 한국전쟁' 이다.
이렇듯 크고 작은 행사와 기념일이 담겨진 6월이 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신바람을 불러 일으켜 줄 태극전사들의 파티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2010 남아공 월드컵'.
역대 최강 '브라질' 과 맘먹는 남미의 최강 '아르헨티나' 와 '피지컬사커' 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지중해의 다크호스 '그리스' 와 맞붙게 된 피할 수 없는 승부가 곧 '2010 남아공 월드컵' 에서 벌어지게 된다.
경기일정은 다음과 같다.
보통 일반인이 보아도 어이없는 대전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스스로 포기하기 보다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한다면 보다 좋은 결과도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얼마전 '일본' 과의 평가전을 보고 약간의 가능성도 점쳐 보았다.
'1승 1무 1패' 로 운좋게 16강에 합류 할 수 있다고 나 자신 스스로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좌우지간 많은 기념일과 행사가 즐비한 6월.
좋은 소식들만 있길 바라며 새롭게 계획을 세워 알찬 한 달이 되도록 하자.
이번 한달만큼은 모쪼록 누구나 근심걱정 없이 신명나는 그러한 6월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지방선거' 와 '월드컵' 이 겹쳐있는 흥미진진한 6월.
이번달에 행해지는 각종 행사와 기념일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1일인 오늘은 '세계 우유의 날' 이다.
'세계우유의 날' 행사는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2001년 6월 1일을 '세계 우유의 날'로 선포한 이후 매년 전 세계
40여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그리고 5일은 '환경의 날' 이다.
또, 6일은 '현충일' 에다 '망종' 이다.
顯忠日(현충일)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공휴일.
매년 6월 6일 각종 행사와 함께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 그리고 국민들이 국립묘지에서 참배한다.
이날 오전 10시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국민은 1분간 경건히 묵념을 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이날을 공휴일로 정했다.
현충일의 유래
현충일을 6월6일로 정한데는 우리 민족의 풍습이 반영된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24절기중 손이 없다는 청명일과 한식일에는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1956년제정 당시 망종일인 6월6일을 현충일로 정한 것입니다.
<참고로 현충일 사이트에 정의된 현충일>
현충일(顯忠日)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기념일.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국립묘지에서 행해진다. 추모대상은 6·25동란에 전사한 국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현충일이 단순히 선열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켜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이 각자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행하여야 할 사명을 새롭게 하고, 국민 전체의 화합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공휴일.
매년 6월 6일 각종 행사와 함께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 그리고 국민들이 국립묘지에서 참배한다.
이날 오전 10시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국민은 1분간 경건히 묵념을 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이날을 공휴일로 정했다.
현충일의 유래
현충일을 6월6일로 정한데는 우리 민족의 풍습이 반영된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24절기중 손이 없다는 청명일과 한식일에는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1956년제정 당시 망종일인 6월6일을 현충일로 정한 것입니다.
<참고로 현충일 사이트에 정의된 현충일>
현충일(顯忠日)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기념일.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국립묘지에서 행해진다. 추모대상은 6·25동란에 전사한 국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현충일이 단순히 선열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켜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이 각자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행하여야 할 사명을 새롭게 하고, 국민 전체의 화합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4절기 중 아홉번째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이다. 양력으로 6월 6일 경부터이며, 음력으로 4월 또는 5월에 든다.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뜻으로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이뤄진다. 각 지역별로 다양한 망종 풍속을 갖는데, 농사의 한 해 운을 보거나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다. 농촌에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드는 절기로, 24절기 가운데 아홉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75°에 이르는 6월 6일경에서 하지 전까지의 약 15일간을 말하며, 음력으로는 4월 혹은 5월에 든다.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옛 중국에서는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 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 에는 개똥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모내기와 보리베기를 하는 시기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은 이 때 보리를 베어야 논에 모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이 시기가 지나면 무르익은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많아 최소한 이 때까지는 보리베기를 마쳐야 한다.
지역마다 망종 풍속도 달라서 보리를 많이 심었던 남쪽에서는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 정도로 1년 중에서 이 시기가 가장 바빴다. 전라도에서는 '보리 그스름'이라 하여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풋보리를 베어다 그슬려 먹는 풍습이 있었고, 이 날 벤 보리를 밤이슬에 적셨다가 다음날 먹으면 허리가 건강해지며, 또 한 해 동안 병치레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경기도를 제외한 중부 이남에서는 망종날 천둥 번개가 치면 그 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믿었고, 경상도의 섬 지역에서는 망종이 빠르거나 늦게 들지 않고 중간에 들어야 길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보통은 '망종보기'라 하여 망종이 일찍 들거나 늦게 드는 것을 가지고 그해의 풍흉을 점칠 경우, 4월에 망종이 들어야 보리농사가 잘 되고 동시에 빨리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간 다음, 체로 쳐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는데, 모두 지나간 시대의 망종 풍속도로서, 지금은 명맥만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농촌에서는 이 무렵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드는 절기로, 24절기 가운데 아홉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75°에 이르는 6월 6일경에서 하지 전까지의 약 15일간을 말하며, 음력으로는 4월 혹은 5월에 든다.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옛 중국에서는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 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 에는 개똥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모내기와 보리베기를 하는 시기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은 이 때 보리를 베어야 논에 모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이 시기가 지나면 무르익은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많아 최소한 이 때까지는 보리베기를 마쳐야 한다.
지역마다 망종 풍속도 달라서 보리를 많이 심었던 남쪽에서는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 정도로 1년 중에서 이 시기가 가장 바빴다. 전라도에서는 '보리 그스름'이라 하여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풋보리를 베어다 그슬려 먹는 풍습이 있었고, 이 날 벤 보리를 밤이슬에 적셨다가 다음날 먹으면 허리가 건강해지며, 또 한 해 동안 병치레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경기도를 제외한 중부 이남에서는 망종날 천둥 번개가 치면 그 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믿었고, 경상도의 섬 지역에서는 망종이 빠르거나 늦게 들지 않고 중간에 들어야 길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보통은 '망종보기'라 하여 망종이 일찍 들거나 늦게 드는 것을 가지고 그해의 풍흉을 점칠 경우, 4월에 망종이 들어야 보리농사가 잘 되고 동시에 빨리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간 다음, 체로 쳐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는데, 모두 지나간 시대의 망종 풍속도로서, 지금은 명맥만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농촌에서는 이 무렵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9일은 '치아의 날' 이다.
사람의 이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세며 영구치 중 가장 먼저 태어나는 이가 있다. 그 장한 치아를
<육세구치>라고 부른다. 한자말이지만 이 네 글자가 의미하는 바가 커서, 순수한글로 풀이하면 너무 길어지니 짧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네 글자로 부르는 것이다.
만 6세 정도가 되면 잇몸을 뚫고 올라오는 <6세구치>를 기념하는 날인 6월 9일.(6자를 거꾸로 돌리면 9자가 된다.)
만 6세 정도가 되면 잇몸을 뚫고 올라오는 <6세구치>를 기념하는 날인 6월 9일.(6자를 거꾸로 돌리면 9자가 된다.)
또, 10일은 '6.10 만세운동' 의 날.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국왕인 융희(隆熙) 순종 황제의 인산일(因山日
출상일)을 기하여 일어난 독립운동.
그리고 14일은 달콤한 '키스데이'.
유래는 불분명 하지만 연인들끼리의 키스가 허락이 되는 뭐 그런 날이란다.
16일은 창포물에 머리 감는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설날·추석과 함께 3대 명절 중의 하나로 1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고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 아이들과 할 수 있는 풍속이 많이 명절이기도 하다.
(1) 단오의 유래
단오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 충신이었던 굴원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해서 멱라수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에 굴원을 기리는 제사가 시작되었는데 그날이 5월 5일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는데, 조선 정조 때 쓴『열양세시기』에는 이 날 밥을 수뢰(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오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닥치기 전 초여름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단오 행사는 북쪽 지방일수록 번성했는데, 남쪽 지방에서는 대신 추석을 성대하게 보냈다. 단옷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즐겁게 노는 날로 되어 왔다. 단오가 되면 우리 조상들은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들어 먹었고, 여름의 질병과 더위에 대처하기 휘하여 쑥과 익모초를 뜯어 약으로 썼다. 아낙네들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비녀를 삼아 꽂은 채 고운 한복을 바람에 날리며 그네를 뛰었다. 또 남자들은 씨름으로 자웅을 겨루며 하루를 즐겼고, 궁중에서는 임금이 직접 신하들에게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나누어주면서 성큼 다가 선 여름에 대비하기도 했다. 귀한 집에서는 앵두화채와 앵두편과 증편을 제사 지내고, 손님에게도 대접하였다. 단오의 ‘단’자는 처음이라는 뜻이며, ‘오’자는 다섯 오자와 발음이 같으므로, 단오라 하면 초닷새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5월 5일의 이 명절을 단오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2) 단오의 풍속
① 단오 부적
궁중의 관상감에서는 천중부라는 부적을 만들어 대궐 안에 붙였다. 부적을 붙이는 까닭은, 단오 때 양기가 가장 왕성하여 궁중의 온갖 잡귀신을 물리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② 단오선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했는데, 이를 단오부채라고 한다.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내려 주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음력 5월 5일 수릿날이 되면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선물했는데 붉은 주칠과 검은 흑칠을 했다.
③ 단오장
창포 뿌리를 잘라 비녀 삼아 머리에 꽂았는데, 양쪽에 붉게 연지를 바르거나 비녀에 壽(수)자와 福(복)자를 써서 복을 빌기도 하였다.
④ 창포에 머리감기
이날은 창포가 무성한 곳으로 나들이가 머리를 감는데,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⑤ 쑥다발
단오날 오시를 개해 뜯은 약쑥이 양기가 가장 강하다 해서, 한 다발로 묶어 대문 옆에 세워둬 재액과 귀신을 물리쳤다.
⑥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많은 열매가 열리도록 하는 것을 가수라고 하는데, 특히 단온 때는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풍년을 기원했는데 이를 대추나무 시집 보내기라고 한다.
⑦ 장명루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오색실을 손목에 묶어 잡귀를 쫓아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⑧ 여름옷
이전까지 입었던 무명옷을 벗고, 아이들에게 갑사치마, 모시저고리의 여름 옷을 지어 입힌다.
⑨단오굿
집단적인 민속행사로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 지내는 단오제나 단오굿이 있었는데 강릉 단오제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⑩ 물맞이
폭포에 가서 물맞이를 하면 골수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3) 놀이
① 씨름
바쁜 농사철이지만, 단오 때는 일손을 놓고 들녘에 나가 씨름판을 벌이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남자들은 씨름을 통해 자신의 힘이나 기량을 뽐냈다. 이 날 으뜸을 차지한 사람은 대개 황소를 한 마리 상으로 타게 된다. 씨름은 두 사람이 마주 꿇어 앉아 손으로는 상대편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 서로 준비가 되면 심판을 맡은 사람의 구령에 따라 동시에 일어나 겨루게 된다. 서로 들고, 걸고, 다리를 안으로 또는 밖으로 감고 잡아 두르고,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로 싸우는데 들어던져서 먼저 꺼꾸러뜨리는 이가 이기게 된다. 씨름에는 ‘왼씨름’, ‘오른씨름’, ‘띠씨름’ 등의 세가지가 있다. 왼씨름은 오른쪽 다리에 쌑바를 걸고 고개와 어깨를 왼쪽으로 돌리고 하는 씨름이며, 오른씨름은 샅바를 왼쪽다리에 걸고 오른쪽 어깨에 대고 하는 씨름이다. 또, 띠씨름은 허리에다 띠를 매어 그것을 잡고 하는 씨름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씨름은 왼씨름이다.
씨름이라는 말은 고려가 원나라와 통한 이후부터 옛 책에 나와 있다. 단오절 이외에도 가장 재미있는 놀이로서 매우 성대하게 벌인다. 이때 상으로는 황소나 광목 같은 생활 필수품을 주는 일이 많다.
② 그네
그네는 동구 밖에서 탔기 때문에 남녀유별이 엄격했던 전통 사회에서 여인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집밖으로 나와 아름다운 계절과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춘향전>에서도 성춘향과 이도령이 만나는 날이 바로 단오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곳에 따라서는 그네뛰기 경연대회도 열린다. 그네를 잘뛰는 사람은 앞으로 오를 때 그네를 맨 나뭇가지에서 앞으로 나뭇잎을 따기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 타고 뛰기도 하는데, 이것을 ‘쌍그네’라고 한다. 그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 나라 강원도 강릉지방에 학문과 무술을 잘하는 선비가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모기와 파리가 사람을 괴롭게 하므로, 이를 견디다 못해 그가 생각해 낸 것이 그네 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네의 처음이였는데 이날이 5월 5일이였다고 한다. 단옷날은 이처럼 여자들이 하룻동안 그네를 뛰며 즐겁게 노는데, 단옷날 이튿날이 되면 동네 어른들이 나와서 그넷줄을 낫으로 잘라 버린다. 모처럼 매어 놓은 그넷줄을 이렇게 끊어 버리는 것은 그네를 너무 오래 놓아두면, 그네뛰기에 정신이 팔려 농사일에 지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③ 돌싸움
④ 널뛰기
⑤ 윷놀이
⑥ 농악
⑦ 활쏘기
(4) 단오의 계절음식
① 익모초와 쑥
양기가 강한 단오 오시에 익모초와 쑥을 뜯어서 약으로 썼다. 오시는 11시에서 12시를 말한다. 익모초는 여름에 식욕이 떨어질 때 즙으로 먹으면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쑥을 뜯어서 떡을 하기도 하고 또 창포탕에 함께 넣어 삶기도 하는데, 귀신을 막는 효과가 있다.
농가에서는 약쑥을 뜯어 말렸다가 홰를 만들어 들에서 일을 할 때에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을 당기는데 사용하였다. 이때의 약쑥홰는 약쑥 대여섯 개를 한 묶음으로 짚으로 칭칭 감아 연이어 길이를 2미터쯤되게 만들면, 긴 것은 불을 붙이면 하루종일 타게 된다.
또 농가에서는 오시를 기해서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치고 귀신을 물리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② 수리취떡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들어 먹었다. 혹자는 수레바퀴 모양으로 찍어낸다고 수리치떡이라 부르기도 했다. 수리취 대신 쑥을 넣기도 한다.
③ 앵두화채
처음 따는 앵두를 이용해 화채를 하는데, 여름음식의 시작을 알린다.
④ 제호탕
궁중에서는 단오날이 되면 내의원에서 옥추단과 제호탕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제호탕은 사인·오매육·초과·백단향 등 한약재를 가루내어 꿀에 섞어 달인 일종의 청량제로, 더위가 심하여 건강을 해치기 쉬울 때 사용하였다.
(1) 단오의 유래
단오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 충신이었던 굴원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해서 멱라수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에 굴원을 기리는 제사가 시작되었는데 그날이 5월 5일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는데, 조선 정조 때 쓴『열양세시기』에는 이 날 밥을 수뢰(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오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닥치기 전 초여름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단오 행사는 북쪽 지방일수록 번성했는데, 남쪽 지방에서는 대신 추석을 성대하게 보냈다. 단옷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즐겁게 노는 날로 되어 왔다. 단오가 되면 우리 조상들은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들어 먹었고, 여름의 질병과 더위에 대처하기 휘하여 쑥과 익모초를 뜯어 약으로 썼다. 아낙네들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비녀를 삼아 꽂은 채 고운 한복을 바람에 날리며 그네를 뛰었다. 또 남자들은 씨름으로 자웅을 겨루며 하루를 즐겼고, 궁중에서는 임금이 직접 신하들에게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나누어주면서 성큼 다가 선 여름에 대비하기도 했다. 귀한 집에서는 앵두화채와 앵두편과 증편을 제사 지내고, 손님에게도 대접하였다. 단오의 ‘단’자는 처음이라는 뜻이며, ‘오’자는 다섯 오자와 발음이 같으므로, 단오라 하면 초닷새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5월 5일의 이 명절을 단오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2) 단오의 풍속
① 단오 부적
궁중의 관상감에서는 천중부라는 부적을 만들어 대궐 안에 붙였다. 부적을 붙이는 까닭은, 단오 때 양기가 가장 왕성하여 궁중의 온갖 잡귀신을 물리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② 단오선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했는데, 이를 단오부채라고 한다.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내려 주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음력 5월 5일 수릿날이 되면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선물했는데 붉은 주칠과 검은 흑칠을 했다.
③ 단오장
창포 뿌리를 잘라 비녀 삼아 머리에 꽂았는데, 양쪽에 붉게 연지를 바르거나 비녀에 壽(수)자와 福(복)자를 써서 복을 빌기도 하였다.
④ 창포에 머리감기
이날은 창포가 무성한 곳으로 나들이가 머리를 감는데,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⑤ 쑥다발
단오날 오시를 개해 뜯은 약쑥이 양기가 가장 강하다 해서, 한 다발로 묶어 대문 옆에 세워둬 재액과 귀신을 물리쳤다.
⑥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많은 열매가 열리도록 하는 것을 가수라고 하는데, 특히 단온 때는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풍년을 기원했는데 이를 대추나무 시집 보내기라고 한다.
⑦ 장명루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오색실을 손목에 묶어 잡귀를 쫓아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⑧ 여름옷
이전까지 입었던 무명옷을 벗고, 아이들에게 갑사치마, 모시저고리의 여름 옷을 지어 입힌다.
⑨단오굿
집단적인 민속행사로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 지내는 단오제나 단오굿이 있었는데 강릉 단오제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⑩ 물맞이
폭포에 가서 물맞이를 하면 골수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3) 놀이
① 씨름
바쁜 농사철이지만, 단오 때는 일손을 놓고 들녘에 나가 씨름판을 벌이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남자들은 씨름을 통해 자신의 힘이나 기량을 뽐냈다. 이 날 으뜸을 차지한 사람은 대개 황소를 한 마리 상으로 타게 된다. 씨름은 두 사람이 마주 꿇어 앉아 손으로는 상대편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 서로 준비가 되면 심판을 맡은 사람의 구령에 따라 동시에 일어나 겨루게 된다. 서로 들고, 걸고, 다리를 안으로 또는 밖으로 감고 잡아 두르고,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로 싸우는데 들어던져서 먼저 꺼꾸러뜨리는 이가 이기게 된다. 씨름에는 ‘왼씨름’, ‘오른씨름’, ‘띠씨름’ 등의 세가지가 있다. 왼씨름은 오른쪽 다리에 쌑바를 걸고 고개와 어깨를 왼쪽으로 돌리고 하는 씨름이며, 오른씨름은 샅바를 왼쪽다리에 걸고 오른쪽 어깨에 대고 하는 씨름이다. 또, 띠씨름은 허리에다 띠를 매어 그것을 잡고 하는 씨름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씨름은 왼씨름이다.
씨름이라는 말은 고려가 원나라와 통한 이후부터 옛 책에 나와 있다. 단오절 이외에도 가장 재미있는 놀이로서 매우 성대하게 벌인다. 이때 상으로는 황소나 광목 같은 생활 필수품을 주는 일이 많다.
② 그네
그네는 동구 밖에서 탔기 때문에 남녀유별이 엄격했던 전통 사회에서 여인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집밖으로 나와 아름다운 계절과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춘향전>에서도 성춘향과 이도령이 만나는 날이 바로 단오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곳에 따라서는 그네뛰기 경연대회도 열린다. 그네를 잘뛰는 사람은 앞으로 오를 때 그네를 맨 나뭇가지에서 앞으로 나뭇잎을 따기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 타고 뛰기도 하는데, 이것을 ‘쌍그네’라고 한다. 그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 나라 강원도 강릉지방에 학문과 무술을 잘하는 선비가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모기와 파리가 사람을 괴롭게 하므로, 이를 견디다 못해 그가 생각해 낸 것이 그네 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네의 처음이였는데 이날이 5월 5일이였다고 한다. 단옷날은 이처럼 여자들이 하룻동안 그네를 뛰며 즐겁게 노는데, 단옷날 이튿날이 되면 동네 어른들이 나와서 그넷줄을 낫으로 잘라 버린다. 모처럼 매어 놓은 그넷줄을 이렇게 끊어 버리는 것은 그네를 너무 오래 놓아두면, 그네뛰기에 정신이 팔려 농사일에 지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③ 돌싸움
④ 널뛰기
⑤ 윷놀이
⑥ 농악
⑦ 활쏘기
(4) 단오의 계절음식
① 익모초와 쑥
양기가 강한 단오 오시에 익모초와 쑥을 뜯어서 약으로 썼다. 오시는 11시에서 12시를 말한다. 익모초는 여름에 식욕이 떨어질 때 즙으로 먹으면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쑥을 뜯어서 떡을 하기도 하고 또 창포탕에 함께 넣어 삶기도 하는데, 귀신을 막는 효과가 있다.
농가에서는 약쑥을 뜯어 말렸다가 홰를 만들어 들에서 일을 할 때에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을 당기는데 사용하였다. 이때의 약쑥홰는 약쑥 대여섯 개를 한 묶음으로 짚으로 칭칭 감아 연이어 길이를 2미터쯤되게 만들면, 긴 것은 불을 붙이면 하루종일 타게 된다.
또 농가에서는 오시를 기해서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치고 귀신을 물리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② 수리취떡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들어 먹었다. 혹자는 수레바퀴 모양으로 찍어낸다고 수리치떡이라 부르기도 했다. 수리취 대신 쑥을 넣기도 한다.
③ 앵두화채
처음 따는 앵두를 이용해 화채를 하는데, 여름음식의 시작을 알린다.
④ 제호탕
궁중에서는 단오날이 되면 내의원에서 옥추단과 제호탕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제호탕은 사인·오매육·초과·백단향 등 한약재를 가루내어 꿀에 섞어 달인 일종의 청량제로, 더위가 심하여 건강을 해치기 쉬울 때 사용하였다.
17일은 '사막화방지의 날'.
사막화는 기후 변화와 인간활동 등으로 인하여 건조·반건조 지역이나 건조한 저습(低濕)지역의 토양이 침식되거나 산림이 황폐화되는 등 사막 환경이 확대되어 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자 국제 사회는 1970년대 초반부터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 브라질 리우 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아프리카들의 발제로 사막화 대책이 국제적으로 논의되었다.
이에 따라 1994년 6월 17일에 프 랑스 파리(Paris)에서 기상이변과 산림황폐 등으로 심각한 한발이나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들의 사막화를 방지하여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막화방지협약(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을 채택하였다.
1994년 제49차 국제연합총회에서는 사막화방지협약 채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6월 17일을 사막화방지의 날로 지정하였다. 우리나라도 중국 고비 사막 및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발생하는 황사, 북한의 산 림황폐화 등으로 사막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적 협력이 증진되고 우리나라 산림녹화 및 사방기술을 피해국에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4년 6월 17일에 프 랑스 파리(Paris)에서 기상이변과 산림황폐 등으로 심각한 한발이나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들의 사막화를 방지하여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막화방지협약(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을 채택하였다.
1994년 제49차 국제연합총회에서는 사막화방지협약 채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6월 17일을 사막화방지의 날로 지정하였다. 우리나라도 중국 고비 사막 및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발생하는 황사, 북한의 산 림황폐화 등으로 사막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적 협력이 증진되고 우리나라 산림녹화 및 사방기술을 피해국에 지원하고 있다.
18일은 '건설의 날' 이다.
1980년 건설인들의 사기 진작과 건설산업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제정된 날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은 6월 20일로 난민에 관한 기념일이다.
2000년 국제 연합 총회에 의해 의결되어 2001년부터 매년 치러지고 있다. 6월 20일은 "아프리카 난민의 날"에서 왔다.
매년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은 전 세계적으로 행사를 치르고 있다.
2000년 국제 연합 총회에 의해 의결되어 2001년부터 매년 치러지고 있다. 6월 20일은 "아프리카 난민의 날"에서 왔다.
매년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은 전 세계적으로 행사를 치르고 있다.
21일은 1년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으며, 양력 6월 21일경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5월중이다. 하지 때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므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중국에서는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②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③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의 농사 력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는 시기이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천문학적으로는 1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6월 21일경을 말한다.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태양의 남중 (南中)고도가 가장 높아진다. 특히, 하지점이 적도면에서 북쪽으로 23° 27'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북위 23° 27'인 지점에서는 이 날 태양이 천정(天頂)에서 남중한다. 그러나 남반 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로 하지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소가 된다. 또한 동지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대가 되고, 낮이 가장 긴데, 북반구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서울(북위 37° 30')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 때에는 75° 57'이고, 동지 때에는 29° 03'이다.
천문학적으로는 1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6월 21일경을 말한다.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태양의 남중 (南中)고도가 가장 높아진다. 특히, 하지점이 적도면에서 북쪽으로 23° 27'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북위 23° 27'인 지점에서는 이 날 태양이 천정(天頂)에서 남중한다. 그러나 남반 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로 하지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소가 된다. 또한 동지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대가 되고, 낮이 가장 긴데, 북반구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서울(북위 37° 30')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 때에는 75° 57'이고, 동지 때에는 29° 03'이다.
마지막으로 25일은 남북분단의 시발점이 된 '6.25 한국전쟁' 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8월 9일 뒤늦게 대일전에 참가한 소련군은 허울뿐인 관동 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3일 제25군단의 일부가 청진에 상륙하고, 8월 22일에는 평양에 진주하였다. 미군 제24사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 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킴으로써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으며, 공산화통일이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통일정부수립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영구적인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지 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의 기도와 적대정부의 출현만은 절대로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이 타협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통일독립 문제의 해결은 극히 어려웠으며 이 문제를 위해 개최된 미소 공동위원회도 결렬되고 말았다.
1947년 중반에 이르러 미국은 마침내 단일정부의 수립과 신 탁통치의 실시를 전제로 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던 종래의 대한 정책을 포기하고, 분단의 고정화라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유엔은 1947년 제2차 총회에서 통일된 한국정부수립을 위한 총 선거를 1948년 5월 31일 이전에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선거감시를 위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유엔이 결의한 전국적 범위에서의 총선거는 1948년 1월 소련 군정당국이 이의 수락을 거부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지역 출입을 막음으로써 좌절되었다.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실시'를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유엔 감시하의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 헌국회가 구성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 민국의 건국이 세계만방에 선포되었다. 소련군의 비호 아래 북한지역을 장악한 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들은 1948년 9월 9일 이른바 '흑백선거'에 의하여 북한지역에 독자적 공산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 제국의 승인을 얻어냈다. 그러나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정부만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유엔 총회결의 195 Ⅲ호)임을 결의함으로써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서 대한민국의 법통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킴으로써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으며, 공산화통일이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통일정부수립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영구적인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지 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의 기도와 적대정부의 출현만은 절대로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이 타협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통일독립 문제의 해결은 극히 어려웠으며 이 문제를 위해 개최된 미소 공동위원회도 결렬되고 말았다.
1947년 중반에 이르러 미국은 마침내 단일정부의 수립과 신 탁통치의 실시를 전제로 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던 종래의 대한 정책을 포기하고, 분단의 고정화라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유엔은 1947년 제2차 총회에서 통일된 한국정부수립을 위한 총 선거를 1948년 5월 31일 이전에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선거감시를 위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유엔이 결의한 전국적 범위에서의 총선거는 1948년 1월 소련 군정당국이 이의 수락을 거부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지역 출입을 막음으로써 좌절되었다.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실시'를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유엔 감시하의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 헌국회가 구성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 민국의 건국이 세계만방에 선포되었다. 소련군의 비호 아래 북한지역을 장악한 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들은 1948년 9월 9일 이른바 '흑백선거'에 의하여 북한지역에 독자적 공산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 제국의 승인을 얻어냈다. 그러나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정부만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유엔 총회결의 195 Ⅲ호)임을 결의함으로써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서 대한민국의 법통을 확인하였다.
이렇듯 크고 작은 행사와 기념일이 담겨진 6월이 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신바람을 불러 일으켜 줄 태극전사들의 파티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2010 남아공 월드컵'.
역대 최강 '브라질' 과 맘먹는 남미의 최강 '아르헨티나' 와 '피지컬사커' 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지중해의 다크호스 '그리스' 와 맞붙게 된 피할 수 없는 승부가 곧 '2010 남아공 월드컵' 에서 벌어지게 된다.
경기일정은 다음과 같다.
보통 일반인이 보아도 어이없는 대전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스스로 포기하기 보다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한다면 보다 좋은 결과도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얼마전 '일본' 과의 평가전을 보고 약간의 가능성도 점쳐 보았다.
'1승 1무 1패' 로 운좋게 16강에 합류 할 수 있다고 나 자신 스스로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좌우지간 많은 기념일과 행사가 즐비한 6월.
좋은 소식들만 있길 바라며 새롭게 계획을 세워 알찬 한 달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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