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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아버지의 등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낫지 않을 피멍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제발,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빠한테 뺨을 맞았지만 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가뜩이나 집안이 기우는데 등이 굽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기는 정말이지 싫었습니다.

"흠… 걱정 말그래이. 안그래도 허리가 쑤셔서 그날은 식장에도 몬 간다."

시집가는 딸 마음 상할까 봐 아버지는 거짓말까지 하셨습니다.

나는 그 아버지의 아픈 속을 알면서도 결국 결혼식장에 큰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나도 자식인지라 골방에 틀어박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아버지 가슴속의 눈물 얼룩을 지워 드리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흘러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시집살이에 입덧까지 하면서도 시어머니한테는 내색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시장에서 돌아오던 나는 동네 어귀에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작은 키에 굽은 등, 그리고 걸음걸이가 분명 친정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아버지가 아닐거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이 큼직한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저 아래, 가게 아줌마가 주던데……?"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 있는 보따리였습니다.

예감대로 보따리 속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대이. 배 곯지 말고 맛나게 묵으라."

시어른들 볼까 봐 집에도 못 오시고 아버지는 청국장 보따리를 가겟집에 전하고 가신 것이었습니다. 청국장엔 아버지의 짜고 쓴 눈물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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