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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어떤 동행

엄마의 예순 두 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우리 모녀는 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제주여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며 힘겨워하는 엄마를 위해 딸이 바치는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좋지 엄마?"

"좋구나."

필요한 건 내가 다 싸간다고 몸만 단촐하게 오시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주 큼직한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뭔가 아주 소중한 게 들었는지 엄마는 가방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줘요, 내가 들게."

"괜찮다."

"무겁잖아."

"아니, 이건 내가 들고 싶어."

이상하다 했더니, 일은 성산 일출봉을 오르기로 한 날 아침에 터졌습니다.

엄마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한복이라니, 정말 모를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뭔지 모를 짐까지 보자기에 싸들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일정에 따라 성산일출봉으로 향했고 엄마는 가는 내내 그 보자기를 품에 꼭 안고 있었습니다.

'대체 뭐가 들었길래 신주단지 모시듯 한담.'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땀을 빼는 엄마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몇 번이나 가다서다를 되풀이하면서도 보자기만은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엄마의 그 깊은 속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토록 소중하게 품에 품고 온 보따리 속에서 아버지의 사진이 든 액자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액자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자 보시구랴, 여기가 당신이 살아 생전 꼭 한번 와 보고 싶다던 그 일출봉이래요."

엄마는 난생 처음 하는 제주여행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고 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혼자만 좋은 것 보고, 호강하기 미안한 엄마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정말 애틋한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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