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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돌려받은 5천 원

내가 두 번째로 한국을 여행할 때의 일입니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쇼핑을 끝내고 막 나서려할 때 아침부터 흐리던 하늘에서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쇼핑백을 머리에 이고 지하철역을 향해 달렸습니다.

"에이, 이러다간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꼴 되겠군."

지하철역은 너무 멀고 빗줄기는 너무 거세다고 느낄 때 선물가게가 보였습니다. 나는 물을 뚝뚝 흘리며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어머 다. 젖으셨네… 우산 보시게요?"

갑작스런 비 때문에 예정에 없던 돈을 쓰게 된 나는 값이 가장 싸 보이는 우산을 하나 골랐습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얼마죠?"

"네, 그건 만 원입니다."

우산값이 생각보다 비싸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 원을 내고 우산을 받아들었습니다.

비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좍좍 쏟아졌습니다. 그 장대비를 뚫고 막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누군가 나를 불렀습니다.

"저기 잠깐만요. 아저씨… 아저씨."

우산가게 점원 아가씨였습니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내가 낸 돈이 위조지폐? 아니면 우산값을 덜 냈나?'

"아유, 숨차."

대체 무슨 일일까? 긴장한 내 앞에 선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힘들게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이 돈 도로 받으세요."

장부에 기입하려고 정가표를 보다가 내가 산 우산이 5천 원짜리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분 같아서 못 만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의 서툰 영어실력과 내 서툰 한국어실력으로 그 말을 다 알아듣는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내가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겪은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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