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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누나와 라면

우리집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마을 외딴집입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병든 누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습니다. 무슨 병인지 이름조차 모른 채 까맣게 타들어가던 누나…….

가난과 싸우느라 팍팍해져 그리 살갑지 못했던 엄마조차 삐들삐들 말라가는 누나한테만은 뭐든 해주고 싶어했습니다.

"먹어야 산다. 제발… 죽이 싫으면 뭐 딴거 해주랴?"

뭐든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엄마의 말에 고개만 가로젓던 누나가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라면… 라면이 먹고 싶어."

귀한 손님이나 와야 달랑 한 개 끓여 대접하던 라면, 그것도 마을 공판장엔 없고 읍내나 가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면이라니…….

"근데, 괜찮아… 안 먹어도 돼 엄마."

나는 믿기지 않았지만 엄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후여후여 읍내로 달려가 누나가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라면 한 봉지를 사왔습니다. 엄마는 가마솥에 물을 붓고 그 알량한 라면 한 개를 풍덩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누난 그 푹 퍼진 라면조차 제대로 먹질 못했습니다.

누나가 아프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라면 냄새에 회가 동한 내가 그만 이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누나는 잠들고 엄마는 안 계시고, 그렇다면 '때는 이때다' 하며 나는 가마솥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누나 몫의 라면을 내가 후룩후룩 건져먹은 것입니다.

그때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니, 너……."

"어? 엄마……."

엄마는 부지깽이를 들고 철없는 내 행동을 나무라셨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날 밤 내가 장독대 뒤에 숨어 훌쩍이고 있을 때 가엾은 누나는 불면 날아갈 듯 가벼워진 몸을 끌고 와서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누나, 미안해. 미안해. 엉엉……."

"괜찮아, 울지마."

"우우우 아아앙!"

차라리 머리통이라도 한번 쥐어박아 주었더라면 그토록 맘이 아리진 않았을 텐데……."

그날 밤 우린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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