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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머리가 좋아지는 약

나는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쫓기듯 시장에 다녀왔을 때, 집안은 온통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어휴… 세… 상에."

"엄마 맘마… 빠빠빠바……."

놀라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장바구니 앞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뻔한 일. 나는 눈치없이 장바구니 앞으로 달려드는 둘째 아이를 잡고 다짜고짜 엉덩이를 때려 줬습니다.

"금방 청소 했는데 고새 이게 뭐야… 응?"

"으 앙!"

아이는 기겁을 하고 울었고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나는 때리던 손을 멈췄습니다. 사실 아이한테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본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발육이 늦었습니다. 아이큐 80이 될까말까… 게다가 언어장애까지.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아이입니다!

천지분간 못하고 뒤뚱대는 아이를 큰 딸은 그래도, 제 딴에는 언니라고 참 열심히도 챙깁니다. 밖에만 나갔다 하면 짓궂은 남자애들한테 놀림을 당하기 일쑨데도 동생을 부끄러워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날도 엄마한테 야단맞은 동생을 달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한바탕 격투를 벌였다는 큰 딸. 그 애가 저역 무렵 멸치를 다듬는데 저도 거들겠다고 소매을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몸통은 버려 두고 머리만 그릇에 소중히 담는 것이었습니다.

"정은아, 멸치는 몸통이 필요한거지, 머리는 버리는거야."

그 말에 아이가 대꾸했습니다.

"치… 나도 알아.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멸치는 머리에 DHA가 들어 있어서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대. 이거 해은이 줄거야."

많이 먹고 동생 머리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며 모은 멸치머리.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아이를 꼭 껴안았습니다. 천방지축 늦되는 동생이 큰애의 가슴에도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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