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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1006개의 동전

가파른 달동네 언덕 끝, 그 집엔 가난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인 내가 그 누추한 문을 두드렸을때 집에서 나온 주인은 화상으로 얼굴이 반쯤 일그러진 여자였습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평이나 될까. 퀘퀘하고 비좁은 방에는 그녀와 어린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났어요. 아버지와 저만 겨우 살아남았죠."

불이 난 후에 상처투성이가 된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냈고 걸핏하면 손찌검을 해댔다고 합니다.

"으아앙……."

절망에 빠진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껴안은 건 앞 못 보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아주 짧게 그녀를 스쳐갔습니다. 남편마저 세상을 뜨고 생계가 막막해진 판에 화상 입은 얼굴로 할 수 있는 거라곤 구걸뿐이었습니다.

서러운 사람……. 상담을 하는 동안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활보조금이 나올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습니다. 그것은 뜻밖에도 동전이 가득 든 주머니였습니다.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구걸해서 천 원짜리가 나오면 생활비로 쓰고 5백 원짜리는 시력을 잃어 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쓰기로. 100원짜리가 나오면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쓰겠다구요……. 좋은 데 써 주세요."

그 돈을 받아 줘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동전꾸러미를 받아들고 돌아왔습니다. 주머니 안에는 모두 1006개의 100원짜리 주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1006개의 때묻은 동전. 그것은 부자의 억만금보다 더 귀한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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